아이와 가는 미술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예술을 가까이에서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전국에서 미술관이 경쟁적으로 생겨나더니 더불어 어린이 미술관이나 어린이 도서관 같은 어린이 전용 문화공간도 자리를 잡았다. 양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왠지 질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곳들이 많아졌고, 주변을 살펴보면 부모로서 잘 모르겠다 싶어서 어린이 미술관에 믿고(?) 자주 방문하기도 한다. 물론 어린이 미술관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배려한 장소는 맞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가 바뀔 때마다 즐겨 찾는 어린이 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에는 어린이의 요소만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부모님의 책장에서 집어 든 난해하고 이상했던 책과 영화를 훔쳐보며 우리는 자라났다. 또한 음악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서 모차르트니, 바흐, 쇼팽 등을 연습하지 않았는가? 세계 문학 전집의 권위 아래 우리는 꾸역꾸역 이해하기 힘든 고전 소설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물론 소화된 것은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듣는 것, 읽는 것, 보는 것의 넓은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어두면 이후에 만화를 보든 대중음악을 듣든 어릴 적 그릇은 다시 작아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작게 다진 그릇은 커지기 다소 어렵겠지만 키워놓은 그릇 안에는 다양한 것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그릇을 키우는 것 중 중요한 하나가 고전이고 어릴 때 이해하기 힘든 고전들을 두루 읽거나 듣거나 보게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어떠한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지만 입체적으로 생각을 해야하고 동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 작품들과 전시를 보는 것은 사고의 그릇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미술은 미술사와 연결되어 여러 고전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로써 미술사를 공부한 엄마의 쓸모가 하나쯤은 있다고 안도가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어린이의 것과 청소년의 것, 어른의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안전하게 또는 건전하게 교육되는 장과 이 모든 경계가 모호한 지점,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동시에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미술관에 갈 만한 월령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어린이 미술관을 다니며 동시에 내가 보고 싶은 전시에 아이들 데려갔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해서 아이를 데려간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어른들의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난해하든 추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모호할 수 있는 예술적 상황 안에서 아이가 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를, 그것을 즐기고 나아가 조금 더 자라서 엄마아빠와 미술이나 전시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수는 뒤샹 전에서 변기를 보고 "이 아저씨는 장난꾸러기야, 변기를 조각처럼 놓다니"라고 했고 댄 플래빈 전에서는 "(예쁘니까)빛으로 조각을 해도 괜찮지"라고 했다. 최정화 작가의 왕관이 줄에 매달린 작업 앞에서 공주의 꿈을 반짝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본 담배공장 이야기에는 무척이나 불쾌해(?)하며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만 네살 아이는 영상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을 보았다.) 물론 우리 아이의 마음에 전시를 즐기고 본다는 작은 예술적인 씨앗 하나를 심는다는 마음은,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카시트에 앉힐 때까지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꽤 맑게 희석되곤 했다.  하지만 다시 운전대를 잡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하면서 가는 그 길은 행복한 시간임이 분명했다.






by veryjoo | 2019/04/11 14:45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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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oo at 2019/04/12 15:07
한 번 넓어진 그릇은 작아지는 법이 없다! 맞는 말이고, 또 멋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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