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report: 11.Dec.2017


1. 실로 오랜만에 귓속에 이어폰을 넣고 음악을 들어보는 중이다. 온전히 내밀한 시간. 어차피 혼자 있는 시간에 이어폰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없는 집과 그 안의 나는 마치, 아침이 바쁜 주인이 돌보지 못하고 나뒹구는 침대 위의 이불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반백 년 전의 미니멀리즘의 오브젝티비티를 뒤집어쓴 듯, 나는 그냥 여기에 우두커니...

2. 스스로 그려보는 '나'와 정의되지 않은 '나' 사이의 간극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즘엔 한 러시안 피아니스트가 후자의 나를 자꾸만 일깨운다. 감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연주하는 그런 타입. '대단하기도 하고 매료되기도 하지만 나는 이보다는..'으로 시작하는 나의 취향을 확실히 다시 뒤엎어주는 그런 연주자. 마치 광인의 마음을 가진 듯 천연스럽게 연주하는 그 분위기를 요즘 나는 어떠한 연주보다 즐기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3. 잘 써진 한 권의 소설을 덮고는 새삼스레 상상해본다. 소설가라는 부류들을. 편집증적으로 가공의 이야기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상상하고 조직하여 글로 엮는 이들. 사실 우리 뇌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를 글로 적는 그런 기능을 하는 부분은 없다고 들었다. 빚을 돌려막는 것처럼 원래의 기능을 조금씩 돌려돌려돌려서 이러한 기능을 맡게 한다는 것인데, 와, 이보다 더한 변태가 있을까.

4. 우리가 행복하려면 왜 누군가 죽어야 했을까? 우리의 행복과 누군가의 죽음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부모의 사랑과 젊음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그리고 나 또한 그랬음을 되새기니, 알 것도 같으면서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물론 결국 모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루이즈는 부모이지만 부모가 아니었고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읽는데 정말 잘 쓴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니. 독자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  



Daniil Trifonov 의 Chopin Evocations(2017)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 2016, (방미경 옮김, 2017)


by veryjoo | 2017/12/11 13:33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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