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잡지사史

 

1. 열 살, 어린이 문예지를 뒤적이며 운 좋게 실린 내 글과 서울 아이들의 글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무렵부터 ‘잡지’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 삶의 일부였다. 아마도 그 또래 아이들 누구보다도 나는 잡지와 가까웠고 나 스스로도 잡지를 무척이나 친숙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친구들을 선동해 주간지를 만들어 돈을 받고 팔기까지 했는데, 이때에는 물론 잡지가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 결정체임을 알 턱이 없었다.

 

2. 어린이 문예지의 봄비와  꽃, 엄마, 선생님이나 소풍 등의 일차적인 주제의 글쓰기들이 슬슬 유치하게 느껴질 때쯤 그림이 잔뜩 실린 만화 잡지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잘은 모르겠지만 야릇한 감정을 자극하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이 만화 잡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이 시기에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잡지를 접하게 되는데 음악 전문 잡지였다. 정확히 팝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 잡지를 알고 나서 나는 정말 공부하듯 줄을 쳐 가며 잡지를 탐구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이름들과 곡명은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았고 글로 읽었던 음반을 사서 듣고 그 평론가처럼 노래에 대해서 떠들기도 해봤다. 한쪽으로는 아직 이해 못 할 사랑이라는 감정을, 또 다른 쪽으로는 시골 소녀가 가질 수 있는 지적 허영을 잡지로 채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3. 고등학생이 된 나는 어른스러움을 추구하는 유치한 아이였다. 몇 년간 갈고 닦은 팝에 대한 지식(?)은 세련됨의 지표로 써먹을 수 있었으며 만화에서 경험한 학교 선배와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절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기 다른 종류의 잡지와 친해져야만 했는데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다달이 구독해봤던 입시 잡지였다. 서울 고등학생들이 그렸다는 수채화가 실린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봤었고 그림 그리는 방법을 소개한 페이지는 뜯어다 내 이젤 옆에 붙여놓고 보고 또 보았다. 문화 예술에 대한 허술하지만 대략적인 나의 관심사가 드러나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 언니에게 생일선물로 패션 잡지 1년 구독권을 요구하며 한층 발전된 나의 허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고생이던 내가 읽은 패션 잡지의 글은 음악 잡지의 글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화려함과 세련됨에 초점이 맞추어진 잡지의 글은 정신없는 사진들과 함께 내 혼을 쏙 빼놨다.

 

5. 한 권의 잡지를 만드는 것이 천문학적인(내 기준에서...)비용이 들어가는 자본 집약적인 것을 알게 된 것은 20대 중반이다. 그리고 이런 투자비용을 독자인 내가 사는 몇 천원의 비용으로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때이다. 그래 광고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지식 집약적이며 자본 집약적인 잡지는 내가 꼭 좋아할 만한 것들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글과 돈. 특히, (월간)잡지는 한 달을 꼬박 뒤적이고 이후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버려진다. 즉, 무척이나 소비 지향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잡지의 숙명일 것이다. 박물관에 아카이빙 되는 목적이 아니라면 (월간)잡지는 한 달 동안 펼쳐지고 접히고 찢어지며 그 사명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왠지 책꽂이에 있는 깨끗한, 아직 새것 같은 과월호 잡지를 보면 괜히 슬프다. 잡지는 한 달이 지나 과월호가 되었을 때 넝마주의적 모습을 하고 있어야 아름답기 때문이다.

 

4. 나에게 무엇인가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즐거움이었다. 특히 무슨 무슨 전문지의 적당히 어려운 너무 쉽지 않은 잡지의 글은 언제나 최신 경향의 일부였다. 시골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부터 잡지는 단순한 즐거움과 함께 저 멀리, 하지만 뭔가 지금 여기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이 느껴지는 곳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잡지를 통해 가능하면 덜 중요한 곳의 이야기를 더 원한다는 것이다. 좀 더 조용하고, 좀 덜 붐비는 곳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5. 마지막 절이 필요한데 아직 쓰지 못했다. 그런데 몇 달째 묵혀 놓은 글이, 내 노동이 아까워 올려본다. 

by veryjoo | 2013/09/24 19:05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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