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관한 이야기, 또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_1

1. 너무 늦어버린 예매 탓에 뭐 특별히 준비하는 분위기도 못 냈다. 토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볼 수 있는 공연 중 전화로 급급하게 남은 좌석 알아봐서 표를 구했다. 게으름의 끝에는 언제나 후회가 찾아온다. 매번 이런 식인데 이번에는 숙소까지 가서 아무 데나 잡자는 식이었다. 역시 1박을 해야 하는 당일, 날이 어둑어둑하기 시작해오니 어김없이 우울함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이 미루는 버릇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마치 관심 없는 여행에 억지로 따라가는 것 마냥 매번 이런 태도를 보였다. 나도, 너도 참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2. 토요일 오전, 짧지만 멀리 여행을 떠나는 날의 약속 장소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당신을 환영하고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나서 행복하다는 의미를 한꺼번에 그리고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 된다. 그러나 지난밤 마구 화내면서 잠든 탓에 내 얼굴에는 그 간단한 미소마저 지어지지 않았다.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무척 반갑고 만나고싶었다. 웃지 않는 상대의 얼굴이란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너에게 시종일관 그런 태도를 유지했고, 너는 적당히 표정으로 몸짓으로 "그러지 말고 좀 웃어봐"라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3. 통영으로 가는 버스 안, 건조한 공기와 먼지들, 커피와 신문, 빵. 나는 창밖을 바라보거나 신문을 읽었다. 너는 빵을 좀 먹고 나를 좀 살피다가 곧 잠들었다. 궁극의 도시 서울을 벗어나는 기분은 언제나 야릇한 일탈처럼 흥분된다. 남으로 남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봄이 내게로 오고 있었다. 아직 발가벗은 나무들은 근사하게 날씬했다. 소백산 자락을 지나니 산수유가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가 깊어지며 햇살도 뜨끈하게 데워져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도중에는 잠시지만 햇볕이 따갑다는 생각을 했다.

4. 작고 아름다운 도시를 기대했던 내게 통영은 꽤 큰 도시였다. 신시가지에 있었던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시민문화회관 근처로 향했다. 버스에서는 지도를 펼쳐 이 종이 위에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가늠해보았고, 역시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세부일정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가 내린 곳은 강구안 근처, 마치 통영의 올드시티 같은 곳, 내가 기대했던 그 모습이 거기 있었다. 물론 많은 관광객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관광버스와 수많은 차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과 가족단위 관광객, 연인들의 모습 더불어 쓰레기. 그렇지만 마냥 불평하고 싫어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여행자가 가질 수 있는 다소 너그러운 마음에 내게도 있었고, 시종일관 건조한 내 태도를 부드럽게 해주고자 하는 상대가 있었다. 


by veryjoo | 2013/03/25 17:24 | On Traveling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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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ielbebe at 2013/04/01 01:43
아, 나도 하고 싶다 밀월여행
Commented by veryjoo at 2013/04/01 14:04
난 밀월여행이라는 단어가 참 좋더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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