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report: 11.Dec.2017


1. 실로 오랜만에 귓속에 이어폰을 넣고 음악을 들어보는 중이다. 온전히 내밀한 시간. 어차피 혼자 있는 시간에 이어폰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없는 집과 그 안의 나는 마치, 아침이 바쁜 주인이 돌보지 못하고 나뒹구는 침대 위의 이불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반백 년 전의 미니멀리즘의 오브젝티비티를 뒤집어쓴 듯, 나는 그냥 여기에 우두커니...

2. 스스로 그려보는 '나'와 정의되지 않은 '나' 사이의 간극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즘엔 한 러시안 피아니스트가 후자의 나를 자꾸만 일깨운다. 감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연주하는 그런 타입. '대단하기도 하고 매료되기도 하지만 나는 이보다는..'으로 시작하는 나의 취향을 확실히 다시 뒤엎어주는 그런 연주자. 마치 광인의 마음을 가진 듯 천연스럽게 연주하는 그 분위기를 요즘 나는 어떠한 연주보다 즐기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3. 잘 써진 한 권의 소설을 덮고는 새삼스레 상상해본다. 소설가라는 부류들을. 편집증적으로 가공의 이야기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상상하고 조직하여 글로 엮는 이들. 사실 우리 뇌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를 글로 적는 그런 기능을 하는 부분은 없다고 들었다. 빚을 돌려막는 것처럼 원래의 기능을 조금씩 돌려돌려돌려서 이러한 기능을 맡게 한다는 것인데, 와, 이보다 더한 변태가 있을까.

4. 우리가 행복하려면 왜 누군가 죽어야 했을까? 우리의 행복과 누군가의 죽음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부모의 사랑과 젊음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그리고 나 또한 그랬음을 되새기니, 알 것도 같으면서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물론 결국 모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루이즈는 부모이지만 부모가 아니었고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읽는데 정말 잘 쓴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니. 독자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  



Daniil Trifonov 의 Chopin Evocations(2017)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 2016, (방미경 옮김, 2017)

by veryjoo | 2017/12/11 13:33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NOCES DE COTON

"우린 정말 잘 맞는 것 같아"라는 말은 사실,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기꺼이) 잘 맞춰줄 용의가 있어." 일 것이다.
열렬히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서로를 원하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서로의 기분을 살펴 가며 기분 좋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은 아주 어린 사랑의 단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연애할 때와 다름없이 그대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 것은, 그리고 그대도 그런 것 같다는 아주 신선한 사랑의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함께 편안하고 안락한 행복이 솟아난다. 아주 맑고 작은 샘, 고운 자갈의 아래에서 지하수가 퐁퐁 떠오르듯이 말이다. 

이런 기분은 매우 현실적인 허상인데, 이를 실제화 시켜주는 매개체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작은 사과.
"엄마는 아빠가 너희를 예뻐하면 나를 예뻐하는 것 같았어"라고 말하는 엄마가 느꼈을 감정과 아주 유사한 것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니 삼십 년 전의 엄마가 눈앞에 그려진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렇게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마음껏 그녀의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결국, 나는 엄마가 되었고 작은 사과를 보며 나와 같았을 앳된 엄마를 떠올려본다.

뜨겁게 사랑을 속삭일 때도, 뾰족하고 차가운 얼음 조각처럼 서로를 찔러댈 때도, 나는 그 대상이 그대여서 좋다고, 꼭 말해주련다. 오늘 밤에도, 내년에도.

by veryjoo | 2015/02/16 18:55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Recent report: on marriage

2월 19일 자정
어릴 적, 아빠가 엄마 일터로 아빠가 꽃을 보냈을 때부터 나는 결혼이 좋았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혼은 내게 '꿈'이었다. 정기적인 연애도, 잦은 소개팅도 않던 나에게 결혼은 정말 말 그대로 꿈같은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게 내 중심으로 편안하게 길들여질 나이가 되었을 즈음, 나는 어떤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와 연인의 사이에서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떤 모호한, 알 수 없는 감정이 싫지 않았다. 몇 달 후에는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경계에서 헤매며 울기도 했는데 일 년 후에는 제법 사랑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일 년이 훌쩍 넘은 어느 봄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 꿈이 너로 인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생각. 그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어릴적 꿈. 이해타산과 사회적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어릴적 꿈이 이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게 나의 적극적인 노력과 관계 없을 때의 확률은 얼마나 더 낮아질까? 

남들이 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울타리를 나도 기꺼이 세우게 되었다. 물론 많은 게 무섭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아마도 연애를 할 때보다 많이 싸울지도 모르고 현실 안에서 녹아버린 솜사탕처럼 단냄새만 남아 끈적끈적 불쾌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행복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들과 같은 부부이면서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도하게 꾸며진 것들을 불편해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걸 좋아하는 중에서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것이 적어도 내가 찾아낸 나와 그의 접점이자 삶의 태도인데 이는 우리의 '가정'이 지향하는 기본이 되어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할 것이기 때문이다.(기본적인 철학의 중요성은 열 번 강조해도 모자란다)아직은 내 바람일 뿐이지만 말이다.

오늘 나의 남편이 된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결혼하고 싶어 했었어?"라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엄마아빠가 좋아 보이면 그랬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의 옆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대답으로는 부족하다. 이전에는 디즈니 동화의 해피엔딩마냥, 꽃을 선물 받고 찍은 사진 속 엄마의 미소를 떠올리며 결혼을 하고 싶어 했을 뿐이지만 '그대'와는 결혼을 해 같이 살고 '가정'을 만드는 보수적이지만 또 새롭기도 한 것을 하고 싶었다고. 뜨겁게 연애만 하기에는 뭔가 빠진 것 같았다고 말이다.

행복의 층위는 매우 다채롭고 그 폭 또한 매우 넓다. 그 깊이와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느끼는 행복은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범위에 속한다. 그냥 행복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괜한 소리를 해대는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by veryjoo | 2014/03/18 13:52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잡지사史

 

1. 열 살, 어린이 문예지를 뒤적이며 운 좋게 실린 내 글과 서울 아이들의 글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무렵부터 ‘잡지’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 삶의 일부였다. 아마도 그 또래 아이들 누구보다도 나는 잡지와 가까웠고 나 스스로도 잡지를 무척이나 친숙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친구들을 선동해 주간지를 만들어 돈을 받고 팔기까지 했는데, 이때에는 물론 잡지가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 결정체임을 알 턱이 없었다.

 

2. 어린이 문예지의 봄비와  꽃, 엄마, 선생님이나 소풍 등의 일차적인 주제의 글쓰기들이 슬슬 유치하게 느껴질 때쯤 그림이 잔뜩 실린 만화 잡지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잘은 모르겠지만 야릇한 감정을 자극하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이 만화 잡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이 시기에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잡지를 접하게 되는데 음악 전문 잡지였다. 정확히 팝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 잡지를 알고 나서 나는 정말 공부하듯 줄을 쳐 가며 잡지를 탐구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이름들과 곡명은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았고 글로 읽었던 음반을 사서 듣고 그 평론가처럼 노래에 대해서 떠들기도 해봤다. 한쪽으로는 아직 이해 못 할 사랑이라는 감정을, 또 다른 쪽으로는 시골 소녀가 가질 수 있는 지적 허영을 잡지로 채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3. 고등학생이 된 나는 어른스러움을 추구하는 유치한 아이였다. 몇 년간 갈고 닦은 팝에 대한 지식(?)은 세련됨의 지표로 써먹을 수 있었으며 만화에서 경험한 학교 선배와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절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기 다른 종류의 잡지와 친해져야만 했는데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다달이 구독해봤던 입시 잡지였다. 서울 고등학생들이 그렸다는 수채화가 실린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봤었고 그림 그리는 방법을 소개한 페이지는 뜯어다 내 이젤 옆에 붙여놓고 보고 또 보았다. 문화 예술에 대한 허술하지만 대략적인 나의 관심사가 드러나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 언니에게 생일선물로 패션 잡지 1년 구독권을 요구하며 한층 발전된 나의 허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고생이던 내가 읽은 패션 잡지의 글은 음악 잡지의 글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화려함과 세련됨에 초점이 맞추어진 잡지의 글은 정신없는 사진들과 함께 내 혼을 쏙 빼놨다.

 

5. 한 권의 잡지를 만드는 것이 천문학적인(내 기준에서...)비용이 들어가는 자본 집약적인 것을 알게 된 것은 20대 중반이다. 그리고 이런 투자비용을 독자인 내가 사는 몇 천원의 비용으로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때이다. 그래 광고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지식 집약적이며 자본 집약적인 잡지는 내가 꼭 좋아할 만한 것들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글과 돈. 특히, (월간)잡지는 한 달을 꼬박 뒤적이고 이후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버려진다. 즉, 무척이나 소비 지향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잡지의 숙명일 것이다. 박물관에 아카이빙 되는 목적이 아니라면 (월간)잡지는 한 달 동안 펼쳐지고 접히고 찢어지며 그 사명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왠지 책꽂이에 있는 깨끗한, 아직 새것 같은 과월호 잡지를 보면 괜히 슬프다. 잡지는 한 달이 지나 과월호가 되었을 때 넝마주의적 모습을 하고 있어야 아름답기 때문이다.

 

4. 나에게 무엇인가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즐거움이었다. 특히 무슨 무슨 전문지의 적당히 어려운 너무 쉽지 않은 잡지의 글은 언제나 최신 경향의 일부였다. 시골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부터 잡지는 단순한 즐거움과 함께 저 멀리, 하지만 뭔가 지금 여기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이 느껴지는 곳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잡지를 통해 가능하면 덜 중요한 곳의 이야기를 더 원한다는 것이다. 좀 더 조용하고, 좀 덜 붐비는 곳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5. 마지막 절이 필요한데 아직 쓰지 못했다. 그런데 몇 달째 묵혀 놓은 글이, 내 노동이 아까워 올려본다. 

by veryjoo | 2013/09/24 19:05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0)

20130924: 잘 모르겠다.



언제나 중간 정도만 하고 싶다. 적당히...

너무 가깝고 뜨거우면 상대방에게 화상을 입히고, 또 너무 차가우면 그대로 얼려버리니 문제다.

방법을 잘 모르겠다.



**************

작년 가을에 뚫었던 귓구멍은 아직도 덧난다.

게다가 오늘은 마알간 피가 철철 났다.

왜 그래....


by veryjoo | 2013/09/24 11:52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봉준호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봉준호

 


1. 음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설국열차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뭐... 그냥 그래, 나쁘지는 않아"라고 했던 몇몇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아, 이건 뭔가....?' 나 스스로 계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영 개운치가 않아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물론 매우 개인적이면서 영화에 관한, 감독과 원작자에 관한 더불어 배우들에 관한 전문적 지식 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분석이니 본인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겠다.

2. 극장에 들어설 때의 나의 태도: 그러니까... 설국영화라는 영화에 기대하는 바는 간단하게 하나였다. ‘얼마나 지적으로 돈을 발랐을까!’ 이게 뭘 뜻하느냐면 나는 처음부터 약간은 꼬인 상태였다는 것이다. 더불어 오랜만에 혼자 찾은 평일 낮의 극장은 내가 기대하던 것과 매우 달랐다. 안 보면 못 배기도록 뉴스라는 탈을 쓰고 온갖 매체에 매일매일 등장하는 광고 효과가 톡톡했나 보다. 광고가 끝나고 극장 조명이 내려갈 때조차 일부 아저씨 아줌마들은 극장 나들이가 설레셨는지 대화의 끈을 놓지 못하셨고, 웃어대셨다. 주로 혼자 극장을 찾을 때는 (언제였더라... 가물가물 하지만;;;)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이번에는 별로였다. 그리고 혼자 볼 것이라고 예상을 못 했던 영화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종합해보면 나는 매우 섬세한(또는 날카로운) 상태에서 영화를 마주했다는 것이다.

3.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이게 영화의 주제인가): 설국열차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을 논할 수 없다’ 와 ‘인간의 본성은 없다. 교육된 본성이라면 몰라도’라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을 성악과 성선 두 가지로 나누고 있는 것 자체가 왠지 이상했다. 착하고 나쁜 것의 기준 또한 매우 애매하다. 이 모두는 문화에 의해서 제단 되어 교육된 것이다. 더 집요하게 말해보자면, 이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흑백의 주장은 가부장적인 맥락의 이론이다. 물론 이러한 위대한 철학적 논의들이 감히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들도 존재하리라는 것과 다양한 가치(본성)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조상님(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공자님과 같은)들도 그들이 가진 종교적, 환경적 맥락에서 본성을 획득했을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고, 만약(그럴 수는 없겠지만) 외부 주입이 차단된 상태에 처하게 된다면 인간은 그냥 미쳐버릴 것이다.

4. 반전: 물론 마지막에 인간이 ‘악하거나 선하다’는 개념은 일대 반전을 맞이한다. 이는 윌포드 역을 맡은 에드 헤리스Ed Harris의 등장으로 최고조에 다다른다. 관객들은 지금까지 꼬리칸의 사람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봤다면 맨 앞칸 윌포드의 시선으로도 상황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슬릴 만큼 교조적으로 굴었던 중간층의 사람들 또한 일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깨닫는 거다. 이건 예술영화야... 어려워.... 하지만 봉준호 감독을 두고 언론에서 천재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입증된다. 일대 혼란의 쓰나미를 맞은 관객들을 다시 희망적인 맥락에 되돌려 놓는 것. 유치할 만큼 오그라드는 북극곰의 출현은 바로 봉 감독이 천재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5. 또 반전: 개인적인 반전은 사실 에드 헤리스의 등장 그 자체였다. 이 배우에 대한 자세한 필모그라피는 잘 모르나(줄리아 로버츠, 수잔 서랜든과 함께 출연한 스탭맘만 제대로 봤다.) 이 배우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않고 있었다. 뭐.. ‘설국열차’라고 네이놈에 한 번만 검색 해 봤어도 알았겠지만, 어쨌든 몰랐으니!!! 매우 침착하고 논리적인 윌포드의 변을 듣자니 스믈스믈 공감대가 밀려왔다. 물론 때는 이미 늦었다. 광분한 기차 안 탑승객들과 문을 열려는 냄궁민수, 그리고 애매하게 굴기 시작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서로 협의 되지 않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에 나섰고 마침내 기차라는 작은 세상은 천지개벽을 맞이한다.

6. 아쉬움: 확실히 커티스가 마지막에 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아무리 ‘대중적 취향을 고려했을 거야’라고 자위를 해봐도 북극곰은 너무한다. 냄궁민수가 눈이 녹고 있다고까지 힌트를 줬으면 그걸 살리던지... 이건 뭐... 갑자기 에너지 절약 캠페인 느낌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봉 감독님께서 이제는 이런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와 비쥬얼 말고 다른 부분에서 천재끼를 보여주면 어떠실지... 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높아지는 역치 때문에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상태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7. 끝: 봉감독에 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다음 영화를 보고 결정해야겠다. 차라리 좀 더 지적으로 돈을 처발랐다면 나는 침 흘리며 좋아했을 거다. 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각 칸마다 극적으로 변하는 풍경이 좋긴 했다. 등장인물들이 전부 퍼펫 같아서 그 느낌을 다 갉아먹었나? 아 그리고 틸다 스윈튼 기대하고 봤는데, 감독이 색을 너무 진하게 입혀서 꼭 그 여자가 아니라도 됐을 캐릭터가 되었다. 오히려 다른 인물들은 캐릭터에 잘 맞았는데, 틸다 스윈튼만 물 위에 기름처럼 느껴졌다. 기차의 전 칸을 오가는 그 역할로 교조적인 동시에 카리스마를 가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좀 과하게 희화화되지 않았나 싶다. 

by veryjoo | 2013/08/20 00:21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0)

'이성異性을 비난하는 글'들을 보며

예쁜 여자만 좋아하는 남자 Vs. 돈만 밝히는 여자, 군인에 대해서 욕하는 여자, 이기적인 여자 ......

요즘 SNS에 떠돌아다니는 한국의 남성 또는 여성을 비판+비난하는 글들이 너무 많다. 마치 이런 글을 생산해내는 화수분이라도 있는 것처럼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글을 보고 공감을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까마득하고 이제 유머로 받아들이려 해도 웃기지도 않는다. 내가 아닌 타인, 특히 이성이라는 익명의 다수를 두들겨 패는 것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스트레스 해소 트랜드 인가 싶을 정도로 마녀사냥식의 비난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어차피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은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 있다. 남자가 예쁘고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여자가 명품백 타령을 하는 것도 모두 같은 전통, 사회, 시대를 살며 교육받은 결과이다. 물론 이러한 못된 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어떤 특정 가치들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동안 부스럼처럼 함께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서로의 호감을 사기 위해 변화했고,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우려고 노력해왔다. 남자는 예쁘게 돈이 발린 텔레비전에나 나올 법한 방부제녀를 원했고 여자는 이십 대에 외제차를 모는 남성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기형적으로 변화해 버렸다. 이것은(헤테로섹슈얼이 무조건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떠나서) 이성애가 주류가 되는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는 가부장주의적인 사고를 기본으로 정치적으로 비정상적인 체제인 상황이다. 여러 맥락이 꼬였다는 이야기.

한국 남녀의 기형적인 변화상을 좀 더 살펴보자. 서구화된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은 여성을 전통적인 맥락과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새로운 맥락(근대 이후 서구적 여성관)에 필요에 따라 위치시킨다. 쉽게 말하자면, 여자는 요리를 잘하고 (마른 것에 가깝게)날씬해야 허는 동시에 가슴도 커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여기서 상대 남자보다 조금 덜 벌면 좋다)  물론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가부장전통에서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며 변화한 시대상에 따라 그들에게도 '미모''다정함''섬세함'등의 덕목이 요구된다. 딱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을 생각하면 굿. 여자는 카드를 들고 성형외과와 백화점을 들락거려야 하고 남자는 재벌2, 3세를 노리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의 남성이고 여성이고 무척 피곤한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상황에 따라서 생물학적으로는 하나의 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가로지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극단의 피로는 결국 이성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 같다. 마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너희는 도대체 뭘 하느냐"라는 식으로...
어느 사회나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한국의 남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남자는 또는 여자는 이래서 참 좋다는 점도 있을 것이고 단점도 있을 것이다. 교과서처럼 뻔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 단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비난하고 희화화시키기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 화살은 이성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사회적인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서로 행복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 아마도 우리는 행복해지는 첫걸음으로 유치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만처럼 이 사회에 대한 속내를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by veryjoo | 2013/05/15 16:27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0)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The Wilhelm Scream


1. 100년 전, 유럽인들은 '모던'이라던지 '아방가르드'라는 이름 아래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각예술을 지향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전통은 곧 보이는 그대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변하였고 여기에서 프랑스인들은 물질의 표면, 빛 그리고 우리의 시각이 만나는 어떤 지점에서 나름의 답을 찾았다. 그렇게 인상주의자들은 '고정된 형태'를 버리고 언제나 변할 수 있는 형태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와 반대로 독일 쪽에서는 보이는 것을 더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물질세계와 인간 육체의 파괴는 그들에게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허망하고 처참한 물질세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하는가? 독일 표현주의자들은 그리하여 더는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을 그만두고 내면의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것은 물질세계 이전의 원시적인 에너지.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모두 형태의 파괴라는 형식적인 유사함이 있지만 사실은 정 반대의 지향점을 가진 것이다.

2.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제임스 블레이크의 뮤직비디오 때문이다.
추상과 구상으로 미술이 양분되기 이전, 피카소가 파사쥬passage를 통해 형태를 열고 인상주의자들이나 표현주의자들이 형태를 유사과학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파괴할 때, 이를 보는 이들의 불안함은 아마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비슷하게나마 경험하게 하는 영상이 바로 제임스 블레이크의 뮤직비디오 <The Wilhelm Scream  > 100년 전 시각 미술 종사자들이 새로운 것을 부르짖을 때, 비 미술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정서적, 감성적 상처가 문득 이 영상을 보면서 떠올랐다. 역시 서양 미술의 '모던'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기도 했다. 100년이 지나도 당시의 모던은 지금의 모던과 별반 다르지 않네.

3. 이 뮤직비디오는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단지 이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 가수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중첩되었거나 뿌옇다. 가끔 선명한 아티스트의 상반신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흐릿하게 변한다. 줌인zoom in되어 얼굴 쪽으로 확대되는 화면에서도 역시 안개에 싸인 듯한 이미지만이 존재한다. 
보는 이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을 때 불안을 느낀다. 또한, 그것을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없을 때도 그러하다. "왜 여기 남자가 등장하며, 왜 그 모습이 자꾸 흐려지는가?" 아마도 완결되지 않은 문장이나, 프랑스 영화 식의 결말 같은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4. 흠, 그런데 이 가수는 영국 출신이라 인상주의도 표현주의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인물이 주로 등장하고 개인적인 서사(주로 충격적이거나 기괴한)를 표현해 냈던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이 음악가의 이름 덕분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들도 오버랩 되면서...
확실히 작년 지산 락페스티벌에서 봤을때부터 흔들렸다. 신기하기만 한 음악가는 아닌가보다. 이 음악가의 뮤직 비디오는 전부 마음에 드네 :-)


by veryjoo | 2013/04/11 14:59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3)

통영에 관한 이야기, 또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_마지막

16. 팀프 두 번째 공연으로 우리가 선택한 공연은 <TIMF 2013 레지던스 작곡가 - 치강 첸 & 파스칼 뒤사팽>이었다. 하아...뭘 먼저 이야기해야 할까. 먼저 나와 내 옆의 그 녀석은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낯설었던 잠자리와 짧았지만 미륵산까지 올랐던 것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아침부터 열을 내서 더더더 피곤해졌다. 그리고 어제 공연의 여파로 콘템포러리 장르에 겁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은 <한국의 작곡가들>보다 더욱 나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이제 더는 나름대로 형식의 분석도 불가능했다. 간신히 마지막 곡의 아름답던 제1 바이올린 언니와 첼로 언니를 보고 제정신을 차렸다. 물론 마지막 곡 형식적으로도 가장 전통적인 미감을 (약간은)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 이렇게 콘템포러리 클래식에 낸 도전장은 처참히 짓밟혔다. (그리고 지금 에드와르 페를레 들으며 안정을 찾고 있음)

17. 통영에서 서울, 4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터라 우리는 늦어진 공연을 탓하며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그렇지만 버스는 한 시간 반쯤 후에나 있었다. 근처 분식집에서 마지막이 될 충무 김밥을 먹었다. 사실 강구안에서 팔던 충무 김밥이 훨씬 좋았다. 오징어 초무침이 거기가 더 나았다. 가격도 거기는 4.000원 정찰제, 여기는 신도시에다 터미널 앞 분식집이라 거기에 500원 더 붙여 판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맛있게 먹었더랬다. 한참을 기다리다 버스에 올랐다. 정신없이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들른 휴게소에서 나는 스낵류의 과자 한 봉지를, 너는 쿠키류의 과자 몇 박스를 집었다. 


18. 아슬아슬하게 탄 버스에서 취객들의 공격을 몇 차례 받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도착했다. 피곤해서 미칠 지경이었고 몸 상태가 불길했다. 그래도 내일 새벽같이 출근할 너를 생각하니 안 된 마음이 들었다. 통영 구경과 팀프TIMF 공연 관람은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왠지 충분히 길고 여유로웠던 듯 아련했다. 역시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시계가 빨리 가는 현실이 있는 곳. 다음 팀프 땐 프로그램 잘 짜서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머물고 싶다고 너도, 나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공수표로 날려버리지 않게, 이번 통영 여행 기억을 더 반짝이게 간직해야겠다. 그리고 나를 더 잘 다듬어야겠다. 



통영 이야기는 내년에 다시 :)

by veryjoo | 2013/04/01 23:03 | On Traveling | 트랙백 | 덧글(0)

통영에 관한 이야기, 또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_4


12. 늦잠으로 분주한 육체와는 다르게 살짝 덜 깬 정신은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꽤 긴 순간 동안 한참이나 게으름을 피웠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난 이래저래 해서 기분이 나빴어". 시퍼렇게 차가운 말들이 툭툭툭 아무렇지도 않게 무방비 상태의 상대방을 찔러댔다. 그리고 그 말들은 또 나를 찔렀다. 참 쉽지 않다. 뭐든지 말이다. 스테레오타잎이지만 너는 사과를 해줬고 나는 울먹울먹하는 눈을 선글라스로 잘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통영에서의 일요일 오전은 뒤늦은 나의 화난 이야기와 커피, 선글라스 그리고 너의 사과가 한데 어우러져 어려운 숙제를 잘 마친 양 참 괜찮았다. 


13. 손잡고 강구안을 쭈욱 걸어서 우리는 '굴정식'을 먹으러 향했다. 이제는 제법 이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두에 다다랐을 때 거기서도 팀프 프린지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그때 공연 중인 팀은 패닉스위치(원래는 패니스 위치였네 ㅎㅎ). 떠들썩 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무겁고 되바라진 노랫말을 신이 나게 부르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손뼉도 치고 동영상도 찍어보았다. 스케쥴이 빡빡하지 않음은 이런 순간에 빛이 난다. 내가 발걸음을 늦추고 싶을 때 늦출 수 있고, 상대가 빨리 가고 싶어 할 때 기꺼이 빨리 갈 수 있는... 도착한 굴정식집은 만원이었다. 자리를 찾아서 싱싱한 굴을 회무침으로도, 전으로도 먹었다. 그래도 너는 해산물과 애호박이 조금씩 들어간 된장찌개를 제일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14.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타는 미륵도. 어차피 통영 육지랑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택시를 타면 금방 이동할  수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짧았던 드라이브 길이 정말 좋았다. 벚꽃과 동백이 핀 그 길. 아름다운 통영의 아기자기한 시가지를 달리는 그 길이 마음에 들었다. 입담이 좋던 기사 아저씨 덕이기도 할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몇백 명씩 기다려야 했지만 간단하게 대기번호를 받아서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됐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람들도 구경하고 그랬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적당히 익숙해질 정도가 되니 그 한가운데 내가 있다는 것이 더는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바람이 잔잔하고 적당히 흐린 오후였다.

15. 케이블카는 생각보다 무섭다. 특히 바람으로 살짝 흔들릴 때는 아...난 정말 싫었다. 그래도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섬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해 주셨던 '어머니 바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통영 바다는 섬이 많아 어머니 바라다고 했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젠더이론에 관한 얘기는 접어 두고, 정말 그랬다. 아름다웠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미륵산 전망대까지 올랐다. 이십 분 정도 걸렸으려나? 하늘을 뒤덮은 구름층 때문에 오늘 바다는 약간 어두운 구름 색이었다. 새파란 풍경을 자랑하는 사진과 대조되어 더욱 회색이었다. 그렇지만 그 회색이 도시의 회색은 아니었다. 촉촉하고 기분 좋은, 수수한 회색이었다. 그 덕에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우리는 눈부셔하지 않으면서 잘 다녀왔다. 



by veryjoo | 2013/04/01 14:03 | On Travelin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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