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쥬의 생일

사과, 지쥬, 작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 내가 처음으로 만난 나의 딸.

무엇이든지 너와 함께 '처음'을 선물해주는 아이.

그래서 복잡한, 오만가지 생각을 나에게 투하해버리는 작은 폭격기.

또, 그래서, 내가 알 수 없었던 결의 감정과 행복을 선물해주는 꼬마 산타.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이 세상에 발을 딱 붙이게 해주는 작은 신.

마이리틀포니를 쓰윽, 쉽게 그려내는 드로잉 특기자.

지난 주 피아노 양손 연주를 시작하고 '레가토'를 배운 후 드디어 꼬마 피아니스트.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7세 만 6세.

티비를 잘 못봐서 요즘 트랜드 잘 모르고 촌스럽게 설치는 작은 촌놈.

세상 모든 사랑을 다 모아도 너에게 주기에는 부족할 것 같은 나의 첫째.

네가 뛰어노는 나의 일상을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편안하게 다지고 싶다.

생일을 축하해!

by veryjoo | 2020/07/11 00:02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부모님에대한 이야기




누구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것의 특수성이나 장단점을 알기에는 어렵기도 하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성인이 되어 타인들과 섞여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한 후에야 내가 나고 자란 환경을 정의할 수 있다. 
나는 비교적 편안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 이 말은 내 부모님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하기만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이 어려움을 내비치시지 않고 나를 밝고 거리낌 없이 키워주셨다는 말에 가깝다. 덕분에 부모님은 내게 아름다움과 행복함, 그리고 사랑으로 삶의 토대를 쌓을 수 있게 해주셨다. 사실 이런 것들이 내가 지금 아이들을 키움에 있어 화두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낡은 사진 속의 아빠 엄마는 작고 작은 우리 삼형제를 예쁘게도 입히고 모자도 잘 씌워서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셨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차도 없었던 그 어린 시절. 지금의 나는 생각도 못 할 일들이지만 아빠는 막내를 업고 엄마는 간식과 카메라를 부지런히 챙겨 다니셨다. 사진 속의 아빠 엄마는 아마도 지금 나의 나이와 비슷했으리라. 

아빠 엄마는 우리 삼형제가 무엇이든 배울 수 있게 해주셨다. 물론 배우라고 강요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작은 도시에서 나는 아마도 가장 많은 종류의 학원에 다녀본 아이일 것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주판, 웅변, 컴퓨터, 태권도, 수영, 한문, 영어 그리고 판소리까지! 가끔 학교 공부에 관련한 학원도 다녔지만 오래 다니지 않았고 부모님은 어느 학원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악기와 수영을 빼고는 꾸준했던 학원은 몇 개 없었지만 ㅎㅎㅎ 공부하라는 말도 내 기억하는 바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좋은 기억에 가려졌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엄마는 내가 끼적인 동시를 예쁘게 쓰고 꾸며 액자를 만들어 주셨고 집안 곳곳에 걸어주셨으며 소리 내서 읽어주셨다. 나는 엄마의 책장에서 이리저리 얼쩡거리며 책을 꺼내 읽기도 했는데, 조금 더 커서는 엄마와 언니와 함께 같은 책을 읽기도 했다. 내가 쓴 독후감은 출력해서 냉장고 앞에 붙여두고 어떻게 이렇게 잘 썼냐며 두고두고 이야기하셨다. 아빠는 낮잠 주무실 때 "누가 와서 피아노 좀 쳐라" 하셨다. 그리고 어떤 곡이 끝나고는 오셔서 더듬더듬 곡의 제목을 읽으셨다. 아마 그 곡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작은 콩쿨에라도 나갈 때는 매번 신중히 내 연주를 들어주셨다. 아빠는 멋진 오디오와 온갖 클래식 CD를 사서 집에 무심히(?) 두시고는 내가 이리저리 구경하며 들어볼 수 있게 해주셨다. 아직도 음악을 틀어두고 거실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아름다운 클래식 시디 재킷을 구경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어린 시절 언젠가 엄마와 함께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아빠의 차에서는 항상 조지 윈스턴이 흘러나왔고 엄마의 차에서는 나나 무스꾸리가 흘러나왔다. 
매우 입체적이고 풍성한 기억들이다. 

덕분에 지금 내 삶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고 책과 글이 있다. 모두 아빠 엄마가 심어주신 씨앗들이다.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어디서든 재밌게 놀 수 있는 정도의 수영 실력도 다 부모님 덕분이다. 내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악기와 책 그리고 운동이라는 씨앗을 내 아이들에게도 심어주고 싶다. 이런저런 육아서가 눈에 다소 시시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이미 몸소 너무나 훌륭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아이를 키우는 법은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신 바로 그것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아빠 엄마의 귀여운 걱정거리 둘째딸이다. 이리저리 팔랑팔랑 하고 싶은 것을 해보다 대학원 진학이 늦었나 싶었을 때도 아빠는 "다시 글 쓰는 거로 돌아왔네"하시며 내 삶을 갈무리 해주셨다. 나의 배움의 방황(?)을 그렇게 유의미하게 만들어주셨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녁 식사 후, 식탁 위에 온갖 서류를 올려놓고 살피시던 근사한 엄마의 옆모습. 일요일이면 김치 국수를 점심으로 만드시던 아빠. 잡지에 있는 가로세로 퍼즐을 풀어서 엽서로 응모하던 엄마와 몇 달씩 높은 산행을 준비하시던 아빠. 산행 후 선글라스 자리만 하얗게 남고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돌아오신 아빠. 사춘기의 어린 딸의 "시험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난 보기 싫다"라는 말에 먼저 "이런 상황을 물려주어 미안하다"라며 사과로 대답을 시작해주신 아빠. 매일 정장을 하시고 멋진 모습으로 출근하시던 아빠. 학교로 용돈 주러 들리셨던 아빠. 여행을 가면 멋진 여행지 옷차림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셨던 아빠.

내 삶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다져주신 내 부모님.

내가 내 부모님을 추억하는 것의 반만큼만이라도 아이들이 나와 로를 생각해주면 좋겠다.
 

by veryjoo | 2020/04/24 12:30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4)

양유연: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

양유연 개인전

2019.9.6-29, 아마도 예술공간

 

꽤나 커진 화면 속에는 다양한 층위의 어둠과 빛이 존재한다작가는 아주 약하게 색을 칠하거나 심지어 색을 전혀 칠하지 않음으로 빛을 보여준다. 반면에 ()회 덧입힌 어둠의 깊이와 그 면적은 압도적이기도 하다. 덕분에 관람자는 안료를 가득 머금은, 오랜시간 붓질 된 장지와 날것에 가까운 장지의 표면을 눈으로 더듬는다.

관객은 촉각적인 시각 경험을 통해 양유연의 작업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재단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 장지의 가장자리 부분이 이를 더 실감하게 한다. 각 그림은 완결되지 않은 문장처럼, 쉼표처럼 그렇게 한 템포 늦추고 다음 그림으로 시선을 옮기게 만든다.

작업의 이미지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내용을 시사하는 듯 보이지만 구체적이거나 특정한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림의 장면 장면은 무심하지만 동시에 매우 사색적이다. 무엇을 응시하는눈빛이나 숨겨진 얼굴, 옆모습, 다채로운 어둠 속에 함몰된 장소…. 덕분에 관객은 주제보다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그림 속 특별할 것 없는(또는 보편적인) 장면 덕에 관람자의 개별적인 생각이나 경험과 연관된다.

그러니까 작업과 전시에서 보이는 사유적인 특성은 결국 관객의 경험으로 귀결된다.입체적인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그래왔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고통을 감각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점차 작가의 시선이 개인 내부에서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으로 확장됨을 보았다. 결국 이번 전시에서 그의 시선은 보편적인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이번 전시의 사유적 특징은 장지와 먹이라는 매체의 전통성에 기대어 있기도 하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작업을 보며 즐거웠던 점은 양유연이 보여주고자 하는 사유의 깊이 또는 끝없음의 깊이를 전통의 그것과는 상반되게 보여준것이다. 그는 깊이에 대한 문제를 텅 빈 공空에서 찾지 않고 먹먹하고 지배적인 어둠을 통해 보여주었다. 얼마간 칠하고 마르고를 반복하며 어둠은 거대하고 다채롭게 화면을 지배하며 깊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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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전통과 본인의 그리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서 위와같은 특징이 의식적인 것인지 자연스러운 그리기의 과정을통해 드러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와 그림들. 이번 전시가 정말 좋았는데 이러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다음 전시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작가에게는 거대한 과제일 테지...

늦었지만 짤막한 전시 보고를 올려본다.



by veryjoo | 2020/01/14 00:37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0)

Recent Report: On my children

아름다운 가을이다. 
작은 아기 새 두 마리는 꼬물꼬물 겨울을 거치고 봄에 아장거리다가 여름을 열심히 나고 가을을 맞이하였다. 또렷이 말을 하는, 복잡한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리고 티 없이 웃어주는 아이들.

지쥬
우리 나이 여섯살. 만 다섯살.
꼭 나와 같이 여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학원에 앉아서 계이름 노래를 부르던 꼬꼬마가 아른거린다. 지쥬는 그렇게 꼭 내 발자국처럼 나를 쫓아준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정확히 얼마큼 세련된 철학을 가지고 나를 교육시키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을 알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꽤나 행복하고 근사한 것인지 아는 분들이었다. 잘한다고 호들갑을 떨어주시는 대신에 피아노를 방에 놔주시고 차분히 내 피아노 연주를 들어주셨던 멋진 분들이다. 그래서 나도 지쥬가 피아노 건반을 세 손가락으로 딩동거릴 때 차분히 들어주고 싶었는데 역시 나는 호들갑이 먼저 튀어나온다. 나는 손가락에 힘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아이는 힘이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래된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지수를 들여보내고 밖에서 레슨을 듣는 기분은 정말이지 신기함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미 진행 중이던 발레와 함께 이번 달부터는 축구도 시작했다. 아빠 덕에 리버풀이니 F.C 서울이니 읊고 다니는 딸답게 이름이 딱 박힌 선수 유니폼을 입고 드리블을 조심조심 연습한다. 그리고 또 하나, 영어동화교실에도 가게 되었다. 영어를 직접적으로 배우는 시간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영어 동화를 읽고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이랑 놀다 오는 잔잔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많은 지인의 사랑을 받고 태어나 자란 아이는 이렇게 이번 가을 본격적인 사교육(?)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덕분에 내가 바빠졌지만 이것도 한때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나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직접 그것을 배우는 순간을 지켜본다는 것은 나의 여러 층위에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지고
크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네살, 만 세살 아이.
큰 눈망울이 그렁그렁 너무나 사랑스러운 지고.
여러 차례 이야기 해왔지만 정말이지 이 아이는 복잡한 감정이 증발해 버리고 사랑스러움이라는 에센스만 남은 아이 같다. 그 많고 복잡했던 감정들, 그러니까 지쥬와 함께 경험했던 설렘과 기대, 놀람, 신기함 등의 다양한 감정들 말이다. 
지고는 이번 여름을 지내며 말을 나름 유창하게 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떼어서 잘 때만 차고 잔다. 그마저도 쉬를 하면 불편한지 떼를 부리는 걸 보니 이제 정말 뗄 때가 된 듯싶다. 누나가 좋아서 누나가 시키는 것도 잘하고 누나가 귀여워해 주면 너무나 즐거워하는 아이. 누나의 사교육(?) 덕분에 엄마와 함께 누나를 쫓아다니지만 누구보다도 신나하는 중이다. 


입체적이고 복잡한 감정은 따져보고 풀어서 정리하지 않으면 두루뭉술하게 단순화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아쉬워서 몇 자 적어놓기로 한다.   

by veryjoo | 2019/10/31 16:08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내생일 2019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생일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 것인지, 올해 특별히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일 날짜 임박한 장소 예약과 친구들 초대 때문에 올해 생일은 신나는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참 좋았으니 곱씹어 보기로 하자.

 

1. 요즘 이래저래 속이 좀 상하거나 우울한 상태였는데, 생일 전날 아침, 로가 지쥬와 꽃과 선물상자를 살금살금 다가와 전해주었다. 본인이 마음에 드는 다른 꽃이 있었다면 (아마도)고르지 않았을 폼폼 국화를 건네는데 그게 지수와 어울려서 귀엽기도했다. 몇년째 내 발 사이즈를 오해(?)하고 있었던 덕으로 올해 로의 선물도 며칠은 더 기다려야 제대로 받을수 있게 되었다.

 

2. 생일 전날 부모님의 서울 방문.

로의 생일 축하를 뒤로하고 아빠엄마와 약속 때문에 지고와 둘이서 서울로 향했다.

네츄럴본 멋쟁이인 아빠의 봄옷 쇼핑도 좋았고, 엄마의 안경을 고르는 천진한 표정도 좋았다. 아니 평생 안경을 쓰셨는데 무슨 안경이 어울리는지 모르겠다며 자꾸 점원에게 그 기준(?)을 묻는 귀여운 엄마. 그러면서 평소에 내 안경이 괜찮아 보였다며써보신 동그란 테를 흡족해하셨다. (엄마는 몇 년 전, 내안경테를 맞춰주실 때, 이 안경은 수업 시간에만 끼라고, 밖에서는 뿔테 끼라고 하셨었음.) 아쉽게 로와 지쥬는 오지 못했지만, 아빠, 엄마, , 지고까지둘러앉아 먹는 점심식사도 편안하고 맛있었다. 내가 주문한 커피를 마음에 들어하시며 이름이 뭐냐고 물으신 아빠의 모습도 좋았고 비싸다 비싸다 하시지만 막무가내인 둘째딸 비위를 맞춰주시는 엄마도 고맙고 좋았다. 부모님이 건강히(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생일 선물을 가득 받은 것 같았다. 물론 엄마는 생일 용돈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쏘아주셨지만!!

 

3. 아빠엄마를 터미널에 내려드리고 지고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국거리 소고기가 많은 관계로, 그리고 주중에 아이들하고 데굴데굴하는사이에 국 걱정 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일 생일에 음식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로, 미역국과 어린 얼갈이 된장국 두 종류로 한 솥씩 끓여두었다. 아쉽게도 지쥬는 나에게 혼이나 기분이 상하여 혼자 있다가 잠들어버렸지만, 지고가 같이 앉아서 저녁을 미역국으로맛있게 먹어주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해주었지만 지고는 내가 이미역국은 왜 먹는 거지?”라고 물어보면 맛있으니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다시 힌트로 미역국은 생일에 먹는 건데누구 생일일까? 그러면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순진한 동그란 눈이, 아기의 목소리가 너무나 귀여웠다.

 

4. 생일 아침에는 지쥬가 새벽부터 일어나 사랑스럽게 굴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미역국을 한그릇 뚝딱 먹은 후에 엄마 생일이라고 했더니 케이크를 먹자고 했다. 케이크가 없으니 저녁에 먹자고 해두고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집에 들어와보니 집이 그야말로 난장판 이었다. 점심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만 같아 스트레스를 받다가, 생일모드로 좋아하는 음악 틀어두고 살살 하라는 친구의 말마따나 그냥 그렇게 샤워도 하고 집도 대충이지만 치우고 그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5. 친구들과 만난 점심.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은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다들 모여주었다. 모두 공사가 다망한 가운데 무려 연차까지 쓰고 만나러 와주는 그런 사람들. 작년과 같은 장소 같은 테이블에서 다시 맞이하는 나의 생일은 차분했지만 즐거웠고 고마웠다. 식사를 마치고 먹는 내 생일 케이크도 최고로 맛있었다.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웠지만 생일케이크, 꽃 그리고 생일카드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6. 저녁에 다시 미역국을 맛있게 먹고 나서, 아이들을 나눠주려 먹고 남은, 너덜너덜해진 케이크를 다시 꺼냈다. 그 위에 다시 초를 올리니 뭔가 좀 서글펐는데, 그때, 불을 붙이고는 나를 위해 작은 아기 새처럼 신나게 노래를 해주는 두 녀석을 보았다. 축하와 행복의 순수한 결정체 같은 그런 표정을 짓고, 박수를 신나게 치는 그런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기분이 신기하게도, 갑자기, 하얗고 동그란 조약돌이 있는 내 마음속 어딘가의 깊은 샘에서 퐁퐁 솟아났다.

 

7. 생일 저녁에는 쭹이 보낸 선물을 뜯으며 신나했고, 친구에게 받은 귀걸이를 로에게 보여주며 즐거웠다. 그리고 앞으로 도착할(?) 몇몇 선물들을 기다리며 나의 생일 이야기를 접는다. 올해는 기념일마다 로가 바빠서 같이 한 적이 없다. 내내 벼르고 있다가 한가해지면 로랑 데이트 가는 걸 마지막으로 받을 선물로 남겨 두고 있어야겠다.








by veryjoo | 2019/04/16 15:18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1)

아이와 가는 미술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예술을 가까이에서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전국에서 미술관이 경쟁적으로 생겨나더니 더불어 어린이 미술관이나 어린이 도서관 같은 어린이 전용 문화공간도 자리를 잡았다. 양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왠지 질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곳들이 많아졌고, 주변을 살펴보면 부모로서 잘 모르겠다 싶어서 어린이 미술관에 믿고(?) 자주 방문하기도 한다. 물론 어린이 미술관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배려한 장소는 맞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가 바뀔 때마다 즐겨 찾는 어린이 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에는 어린이의 요소만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부모님의 책장에서 집어 든 난해하고 이상했던 책과 영화를 훔쳐보며 우리는 자라났다. 또한 음악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서 모차르트니, 바흐, 쇼팽 등을 연습하지 않았는가? 세계 문학 전집의 권위 아래 우리는 꾸역꾸역 이해하기 힘든 고전 소설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물론 소화된 것은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듣는 것, 읽는 것, 보는 것의 넓은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어두면 이후에 만화를 보든 대중음악을 듣든 어릴 적 그릇은 다시 작아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작게 다진 그릇은 커지기 다소 어렵겠지만 키워놓은 그릇 안에는 다양한 것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그릇을 키우는 것 중 중요한 하나가 고전이고 어릴 때 이해하기 힘든 고전들을 두루 읽거나 듣거나 보게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어떠한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지만 입체적으로 생각을 해야하고 동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 작품들과 전시를 보는 것은 사고의 그릇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미술은 미술사와 연결되어 여러 고전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로써 미술사를 공부한 엄마의 쓸모가 하나쯤은 있다고 안도가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어린이의 것과 청소년의 것, 어른의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안전하게 또는 건전하게 교육되는 장과 이 모든 경계가 모호한 지점,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동시에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미술관에 갈 만한 월령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어린이 미술관을 다니며 동시에 내가 보고 싶은 전시에 아이들 데려갔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해서 아이를 데려간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어른들의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난해하든 추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모호할 수 있는 예술적 상황 안에서 아이가 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를, 그것을 즐기고 나아가 조금 더 자라서 엄마아빠와 미술이나 전시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수는 뒤샹 전에서 변기를 보고 "이 아저씨는 장난꾸러기야, 변기를 조각처럼 놓다니"라고 했고 댄 플래빈 전에서는 "(예쁘니까)빛으로 조각을 해도 괜찮지"라고 했다. 최정화 작가의 왕관이 줄에 매달린 작업 앞에서 공주의 꿈을 반짝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본 담배공장 이야기에는 무척이나 불쾌해(?)하며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만 네살 아이는 영상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을 보았다.) 물론 우리 아이의 마음에 전시를 즐기고 본다는 작은 예술적인 씨앗 하나를 심는다는 마음은,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카시트에 앉힐 때까지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꽤 맑게 희석되곤 했다.  하지만 다시 운전대를 잡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하면서 가는 그 길은 행복한 시간임이 분명했다.






by veryjoo | 2019/04/11 14:45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1)

Recent report: 11.Dec.2017


1. 실로 오랜만에 귓속에 이어폰을 넣고 음악을 들어보는 중이다. 온전히 내밀한 시간. 어차피 혼자 있는 시간에 이어폰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없는 집과 그 안의 나는 마치, 아침이 바쁜 주인이 돌보지 못하고 나뒹구는 침대 위의 이불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반백 년 전의 미니멀리즘의 오브젝티비티를 뒤집어쓴 듯, 나는 그냥 여기에 우두커니...

2. 스스로 그려보는 '나'와 정의되지 않은 '나' 사이의 간극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즘엔 한 러시안 피아니스트가 후자의 나를 자꾸만 일깨운다. 감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연주하는 그런 타입. '대단하기도 하고 매료되기도 하지만 나는 이보다는..'으로 시작하는 나의 취향을 확실히 다시 뒤엎어주는 그런 연주자. 마치 광인의 마음을 가진 듯 천연스럽게 연주하는 그 분위기를 요즘 나는 어떠한 연주보다 즐기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3. 잘 써진 한 권의 소설을 덮고는 새삼스레 상상해본다. 소설가라는 부류들을. 편집증적으로 가공의 이야기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상상하고 조직하여 글로 엮는 이들. 사실 우리 뇌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를 글로 적는 그런 기능을 하는 부분은 없다고 들었다. 빚을 돌려막는 것처럼 원래의 기능을 조금씩 돌려돌려돌려서 이러한 기능을 맡게 한다는 것인데, 와, 이보다 더한 변태가 있을까.

4. 우리가 행복하려면 왜 누군가 죽어야 했을까? 우리의 행복과 누군가의 죽음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부모의 사랑과 젊음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그리고 나 또한 그랬음을 되새기니, 알 것도 같으면서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물론 결국 모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루이즈는 부모이지만 부모가 아니었고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읽는데 정말 잘 쓴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니. 독자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  



Daniil Trifonov 의 Chopin Evocations(2017)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 2016, (방미경 옮김, 2017)


by veryjoo | 2017/12/11 13:33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NOCES DE COTON

"우린 정말 잘 맞는 것 같아"라는 말은 사실,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기꺼이) 잘 맞춰줄 용의가 있어." 일 것이다.
열렬히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서로를 원하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서로의 기분을 살펴 가며 기분 좋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은 아주 어린 사랑의 단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연애할 때와 다름없이 그대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 것은, 그리고 그대도 그런 것 같다는 아주 신선한 사랑의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함께 편안하고 안락한 행복이 솟아난다. 아주 맑고 작은 샘, 고운 자갈의 아래에서 지하수가 퐁퐁 떠오르듯이 말이다. 

이런 기분은 매우 현실적인 허상인데, 이를 실제화 시켜주는 매개체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작은 사과.
"엄마는 아빠가 너희를 예뻐하면 나를 예뻐하는 것 같았어"라고 말하는 엄마가 느꼈을 감정과 아주 유사한 것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니 삼십 년 전의 엄마가 눈앞에 그려진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렇게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마음껏 그녀의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결국, 나는 엄마가 되었고 작은 사과를 보며 나와 같았을 앳된 엄마를 떠올려본다.

뜨겁게 사랑을 속삭일 때도, 뾰족하고 차가운 얼음 조각처럼 서로를 찔러댈 때도, 나는 그 대상이 그대여서 좋다고, 꼭 말해주련다. 오늘 밤에도, 내년에도.

by veryjoo | 2015/02/16 18:55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Recent report: on marriage

2월 19일 자정
어릴 적, 아빠가 엄마 일터로 아빠가 꽃을 보냈을 때부터 나는 결혼이 좋았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혼은 내게 '꿈'이었다. 정기적인 연애도, 잦은 소개팅도 않던 나에게 결혼은 정말 말 그대로 꿈같은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게 내 중심으로 편안하게 길들여질 나이가 되었을 즈음, 나는 어떤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와 연인의 사이에서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떤 모호한, 알 수 없는 감정이 싫지 않았다. 몇 달 후에는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경계에서 헤매며 울기도 했는데 일 년 후에는 제법 사랑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일 년이 훌쩍 넘은 어느 봄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 꿈이 너로 인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생각. 그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어릴적 꿈. 이해타산과 사회적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어릴적 꿈이 이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게 나의 적극적인 노력과 관계 없을 때의 확률은 얼마나 더 낮아질까? 

남들이 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울타리를 나도 기꺼이 세우게 되었다. 물론 많은 게 무섭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아마도 연애를 할 때보다 많이 싸울지도 모르고 현실 안에서 녹아버린 솜사탕처럼 단냄새만 남아 끈적끈적 불쾌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행복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들과 같은 부부이면서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도하게 꾸며진 것들을 불편해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걸 좋아하는 중에서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것이 적어도 내가 찾아낸 나와 그의 접점이자 삶의 태도인데 이는 우리의 '가정'이 지향하는 기본이 되어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할 것이기 때문이다.(기본적인 철학의 중요성은 열 번 강조해도 모자란다)아직은 내 바람일 뿐이지만 말이다.

오늘 나의 남편이 된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결혼하고 싶어 했었어?"라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엄마아빠가 좋아 보이면 그랬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의 옆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대답으로는 부족하다. 이전에는 디즈니 동화의 해피엔딩마냥, 꽃을 선물 받고 찍은 사진 속 엄마의 미소를 떠올리며 결혼을 하고 싶어 했을 뿐이지만 '그대'와는 결혼을 해 같이 살고 '가정'을 만드는 보수적이지만 또 새롭기도 한 것을 하고 싶었다고. 뜨겁게 연애만 하기에는 뭔가 빠진 것 같았다고 말이다.

행복의 층위는 매우 다채롭고 그 폭 또한 매우 넓다. 그 깊이와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느끼는 행복은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범위에 속한다. 그냥 행복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괜한 소리를 해대는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by veryjoo | 2014/03/18 13:52 | Around myself | 트랙백 | 덧글(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잡지사史

 

1. 열 살, 어린이 문예지를 뒤적이며 운 좋게 실린 내 글과 서울 아이들의 글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무렵부터 ‘잡지’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 삶의 일부였다. 아마도 그 또래 아이들 누구보다도 나는 잡지와 가까웠고 나 스스로도 잡지를 무척이나 친숙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친구들을 선동해 주간지를 만들어 돈을 받고 팔기까지 했는데, 이때에는 물론 잡지가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 결정체임을 알 턱이 없었다.

 

2. 어린이 문예지의 봄비와  꽃, 엄마, 선생님이나 소풍 등의 일차적인 주제의 글쓰기들이 슬슬 유치하게 느껴질 때쯤 그림이 잔뜩 실린 만화 잡지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잘은 모르겠지만 야릇한 감정을 자극하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이 만화 잡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이 시기에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잡지를 접하게 되는데 음악 전문 잡지였다. 정확히 팝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 잡지를 알고 나서 나는 정말 공부하듯 줄을 쳐 가며 잡지를 탐구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이름들과 곡명은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았고 글로 읽었던 음반을 사서 듣고 그 평론가처럼 노래에 대해서 떠들기도 해봤다. 한쪽으로는 아직 이해 못 할 사랑이라는 감정을, 또 다른 쪽으로는 시골 소녀가 가질 수 있는 지적 허영을 잡지로 채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3. 고등학생이 된 나는 어른스러움을 추구하는 유치한 아이였다. 몇 년간 갈고 닦은 팝에 대한 지식(?)은 세련됨의 지표로 써먹을 수 있었으며 만화에서 경험한 학교 선배와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절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기 다른 종류의 잡지와 친해져야만 했는데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다달이 구독해봤던 입시 잡지였다. 서울 고등학생들이 그렸다는 수채화가 실린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봤었고 그림 그리는 방법을 소개한 페이지는 뜯어다 내 이젤 옆에 붙여놓고 보고 또 보았다. 문화 예술에 대한 허술하지만 대략적인 나의 관심사가 드러나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 언니에게 생일선물로 패션 잡지 1년 구독권을 요구하며 한층 발전된 나의 허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고생이던 내가 읽은 패션 잡지의 글은 음악 잡지의 글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화려함과 세련됨에 초점이 맞추어진 잡지의 글은 정신없는 사진들과 함께 내 혼을 쏙 빼놨다.

 

5. 한 권의 잡지를 만드는 것이 천문학적인(내 기준에서...)비용이 들어가는 자본 집약적인 것을 알게 된 것은 20대 중반이다. 그리고 이런 투자비용을 독자인 내가 사는 몇 천원의 비용으로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때이다. 그래 광고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지식 집약적이며 자본 집약적인 잡지는 내가 꼭 좋아할 만한 것들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글과 돈. 특히, (월간)잡지는 한 달을 꼬박 뒤적이고 이후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버려진다. 즉, 무척이나 소비 지향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잡지의 숙명일 것이다. 박물관에 아카이빙 되는 목적이 아니라면 (월간)잡지는 한 달 동안 펼쳐지고 접히고 찢어지며 그 사명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왠지 책꽂이에 있는 깨끗한, 아직 새것 같은 과월호 잡지를 보면 괜히 슬프다. 잡지는 한 달이 지나 과월호가 되었을 때 넝마주의적 모습을 하고 있어야 아름답기 때문이다.

 

4. 나에게 무엇인가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즐거움이었다. 특히 무슨 무슨 전문지의 적당히 어려운 너무 쉽지 않은 잡지의 글은 언제나 최신 경향의 일부였다. 시골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부터 잡지는 단순한 즐거움과 함께 저 멀리, 하지만 뭔가 지금 여기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이 느껴지는 곳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잡지를 통해 가능하면 덜 중요한 곳의 이야기를 더 원한다는 것이다. 좀 더 조용하고, 좀 덜 붐비는 곳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5. 마지막 절이 필요한데 아직 쓰지 못했다. 그런데 몇 달째 묵혀 놓은 글이, 내 노동이 아까워 올려본다. 

by veryjoo | 2013/09/24 19:05 | On Everythin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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